같은 소재, 다른 결말
죽은 것이 움직인다는 소재는 어느 문화권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서양 계보의 언데드물은 대개 제거로 끝납니다. 성수를 뿌리고, 목을 베고, 태웁니다. 반면 동아시아의 요괴담은 배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사연을 알아주고, 원을 풀고, 보냅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오래 궁금했습니다.
출발점이 다르다
답은 존재의 출신에 있다고 봅니다.
서양 몬스터의 상당수는 처음부터 다른 종입니다. 좀비도 스켈레톤도 인간이었던 흔적은 남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이미 다른 범주에 속해요. 다른 종이면 대응은 간단합니다. 제거입니다.
동아시아의 괴이는 반대입니다. 원래 사람이었거나, 짐승이었거나, 물건이었습니다. 무언가가 어긋나서 그렇게 된 것이죠. 억울하게 죽어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너무 오래 방치돼서.
어긋난 것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 이야기는 '무엇이 이 존재를 이렇게 만들었나'를 밝히는 구조로 흐르고, 그 답이 곧 해결책이 됩니다.
그래서 장르가 갈린다
이 차이는 장르의 성격까지 바꿉니다.
언데드물은 전투와 생존의 이야기가 되기 쉽습니다. 지치지 않는 적 앞에서 물자와 체력이 바닥나는 소모전이요. 무섭긴 한데 슬프지는 않습니다.
요괴담은 추리와 애도의 이야기가 됩니다. 사연을 캐야 하니 조사가 들어가고, 사연을 알고 나면 감정이 생깁니다. 센과 치히로의 강의 신이나 귀멸의 칼날에서 도깨비의 과거가 마지막에 밝혀지는 구성이 그렇죠. 베고 나서 슬퍼지는 겁니다.
서유기: 마성의 부활 같은 작품이 요괴를 다루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퇴치는 하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를 꼭 한 번은 보여 줍니다.
대응 수단도 다르다
쓰는 도구도 갈립니다. 서양 쪽은 힘과 성속입니다. 신성력, 은, 불, 성수. 물리적으로 파괴하거나 신앙의 힘으로 정화합니다.
동아시아 쪽은 규칙과 봉인입니다. 부적, 진법, 이름, 금기. 문지방을 못 넘는다든가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든가 하는 규칙이 약점이 되고, 베는 대신 가둡니다.
주술 항목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데, 이쪽 문법은 싸움이라기보다 협상이나 절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힘이 약한 인물도 지식만으로 활약할 자리가 생깁니다.
섞어 쓸 때의 함정
요즘은 두 계보를 한 작품에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자체는 재미있는데, 자주 어긋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동양 괴이에 서양식 처리를 하면 이 계보의 장점이 사라집니다. 사연이 있는 존재를 그냥 베어 없애면, 애써 만든 사연이 장식이 되죠. 반대로 감염형 좀비 떼에게 일일이 사연을 주면 전개가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 문법으로 갈지 존재마다 미리 정해 두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이 녀석은 베는 대상, 저 녀석은 푸는 대상 하는 식으로요.
퇴치가 아니라 장례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은 건 동아시아 괴담의 결말이 승리가 아니라 장례에 가깝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겨서 없애는 게 아니라, 사정을 알아주고 보내 주는 것. 적을 이해해야 이길 수 있는 구조라는 게 이 계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몬스터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는 결국 작가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의 문제입니다. 자원으로 두면 산업이 되고, 재해로 두면 정치가 되고, 이웃으로 두면 윤리가 됩니다. 동아시아 괴담은 오래전부터 세 번째를 골라 온 셈이죠. 다만 이건 살아있는 쪽이 죽은 것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의 이야기고, 힘을 다 얻은 당사자가 스스로 죽음을 어떻게 맞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쪽은 우화등선과 리치 글에서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