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등선이라는 결말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게 패배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은 무협 작품에서 절정의 고수는 마지막에 사라집니다. 우화등선(羽化登仙) — 몸에 깃털이 돋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뜻입니다. 도를 다 이루면 그 사람은 화면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처음 이 결말을 봤을 때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세상이 우러르는 고수가 왜 하필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는가 싶었거든요. 이 말은 원래 도교의 신선 사상에서 왔습니다. 수련으로 몸을 정화하면 마침내 육신의 무게를 벗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개념인데, 무협은 이 도교적 결말을 무공 수련의 종착점으로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판타지에는 정반대 결말이 있습니다 — 리치
언데드가 된 마법사, 리치가 그렇습니다. 리치는 죽음이 다가오자 영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붙들어 두고 계속 세상에 남습니다. 단순히 죽음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언데드가 되기를 선택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개념은 서양 강령술(네크로맨시) 전통과 현대 판타지 게임이 만든 합작품에 가깝습니다. 근원은 다르지만 두 결말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궁극에 이른 자는 결국 어떻게 되는가." 무협은 떠남으로 답하고 판타지는 머무름으로 답합니다.
무협에서 힘은 몸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완성의 끝도 몸을 벗는 것입니다
앞서 쓴 기와 마나 이야기에서 정리했듯, 무협의 힘은 밖에서 빌리는 게 아니라 안에 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쌓음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몸을 계속 고쳐 쌓다 보면 마지막에는 몸이라는 그릇 자체가 한계로 남습니다. 그래서 무협의 완성은 몸을 벗는 사건으로 그려집니다. 신선이 된다는 건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고, 그건 성공이자 동시에 퇴장입니다. 가장 강해진 순간이 곧 이야기를 떠날 자격을 얻는 순간인 셈입니다. 그래서 우화등선한 인물은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떠난 것 자체가 완성의 증명이라, 돌아오면 그 증명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판타지에서 힘은 세계에서 빌려오기 때문에, 완성의 끝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판타지의 마나는 세계라는 외부 자원에서 옵니다. 자원을 다루는 능력이 극에 달했다고 해서 자원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능력을 계속 발휘하려면 세계 안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리치가 되는 선택은 이 논리의 극단입니다. 죽음이라는, 세계를 떠나는 유일하게 확실한 사건을 아예 거부해 버리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판타지에서 궁극의 힘을 좇는 인물의 최종 형태는 종종 눌러앉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떠나지 않고, 계속 다스리려 합니다. 탑 하나를 몇 백 년째 지키고 있는 마법사, 왕국 하나를 몇 세기째 저주로 붙들고 있는 군주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머무름이 실패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 강시
무협에도 머무는 존재가 있습니다. 강시입니다. 원래 사람이었지만 수련이 어긋났거나 원한이 남아 시체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우화등선이 수련의 완성이라면 강시는 수련의 정지, 혹은 실패입니다. 둘 다 "몸이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하나는 승격이고 하나는 고장입니다. 판타지의 리치는 이와 다릅니다.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게 아니라, 머물기로 결정한 결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강시는 불쌍하게 읽히고, 리치는 위협적으로 읽힙니다. 같은 "머무름"인데 하나는 동정의 대상이고 하나는 공포의 대상인 셈입니다.
그래서 두 결말은 다른 감정을 남깁니다
앞서 쓴 신과 초월자 글에서, 판타지는 힘의 정점에 신·초월적 존재를 놓아두는 경향이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리치가 되는 인물은 대개 그 자리를 인간이 넘봐서는 안 될 자리로 다루는 세계 안에 있고, 그래서 그 도전 자체가 두려움의 소재가 됩니다. 반대로 무협의 신선 자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일 뿐, 넘봐서는 안 될 금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무협의 결말은 홀가분하게 읽히고, 판타지의 이런 결말은 섬뜩하게 읽힙니다.
정리하고 나니, 제가 왜 두 장면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는지 알겠습니다
이 글은 앞서 쓴 요괴와 언데드 글과는 다른 층위를 봅니다. 그 글은 살아있는 쪽이 죽은 것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를 다뤘고, 이 글은 힘을 다 얻은 당사자가 죽음 앞에서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느냐를 다룹니다. 결국 두 장르는 죽음이라는 같은 문 앞에서 한쪽은 웃으며 나가고 한쪽은 문을 걸어 잠급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무협을 읽고 나면 후련하고 판타지를 읽고 나면 오싹한 이유가, 이 결말의 방향 차이에 있다는 것만은 이제 알겠습니다.